변태사기꾼의 불임치료 - 13부
32. 주말
토요일.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다행히 직장도 휴무여서, 우리 부부는 간만에 나들이를 나섰다.
최근 내가 '불임 치료'에 바빴던 탓도 있어서, 데이트 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가지는 기회였다. 하도 오랜만이라, 마치 학생시절로 타임 슬립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남편의 팔에 꼭 매달려 어딜 가든지 항상 붙어 다녔다.
둘이서 영화를 보고, 둘이서 식사를 하고, 둘이서 쇼핑을 하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자, 몇 년 만에 모처럼 러브 호텔로...
거울로 둘러싸인 벽과 천정. 유리벽으로 된 욕실과 화장실. 커다란 원형 침대 위에서 우리는 오랫만에 불타 올라 서로 뒤엉켰다.
요사이 선생님 앞에서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나는, 남편 앞에서도 여자가 될 수 있어서 기뻤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과 그런 굉장한 섹스를 체험해 버린 지금, 남편과의 섹스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확실히, 선생님과 했던 플레이만큼 격렬하지도 음란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사랑하는 남편의 존재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만족했다.
솔직히 말하면, 안심했고, 또 기쁘기도 했다.
몸과 마음 모두, 아직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그이와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마음속 깊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2라운드 째가 끝나고, 남편의 팔을 베고 누워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서로 맞대고, 여전히 거친 숨소리를 내며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것도 괜찮은데? 결혼하고 나서는 이런, 러브호텔 같은 데는 온 적 없잖아... 굉장히 흥분했어. 저기, 다음 주 주말에도 이렇게 데이트 하지 않을래?"
"응... 좋아, 근데, 다음 주는 좀 힘들 거 같아..."
"왜? 뭐 다른 약속이라도 있어?"
"...어라? 말 안 했었나? 다음 주 주말에 검사가 있다고..."
"아, 그러고 보니까 들은 것 같네... 병원에 입원하는 거야?"
"...응. 검사 입원. 딱 하룻밤만, 있다 올께..."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지금 너한테는 불임 치료가 제일 중요하니까"
"...미안"
여러가지 의미를 담은 '미안'이었다.
물론, 그이는 그 의미까지 알지는 못하지만.
"아냐, 지금 너한테는 병원이 우선이니까. 괜찮아. 그럼 다다음 주로 하지 뭐. 불임이 다 나으면, 또 얼마든지 데이트 할 수 있으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도 상관없고"
"응..."
남편하고 이렇게 살을 맞대고 꼭 부둥켜 안고 있어도, 마음 속이 따끔따끔 아파 왔다.
그렇다. 검사 입원 따위 순 거짓말이다. 남편에게는 그렇게 말해두는 편이 낫다고 선생님이 시켰을 뿐이다.
나는 다음 주 주말, 남편에겐 도저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 선생님에 의해서.
나를 숙박까지 시켜가며 끌어내는 걸 보면, 분명히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단히 끝날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한 말이 기억난다.
분명 이렇게 말했다.
"---아는 사람이 온천 여관을 경영하고 있어서요. 거기 아주 훌륭한 혼욕 온천이 있습니다. 커다란 사우나도 있는데, 거기도 역시 혼욕이라네요. 신기하죠? 요새 열심히 치료에 힘쓰고 있는데도, 전혀 증상이 나아지질 않아서, 좀 더 제대로 여성호르몬을 분비시킬 방법을 찾아 봤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묵을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고 준비해 오세요. 아, 신랑한테는 검사 입원이 있다고 말해두면 될 겁니다"
꾸욱하고 자궁이 쑤셔 온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오늘 하루 종일 남편 옆에 붙어 다니고, 여기 와서는 벌써 두 차례나 서로 사랑을 나눴는데---.
그런데도, 내 몸은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다음 주 주말에 어떤 일을 당할 건지 상상하는 순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해 버리는 것이었다.
"응? 왜 그래?"
걱정이 가득한 그의 얼굴 표정.
그렇다고, 사실을 털어 놓을 수는 없었다.
"으응, 아무 것도 아냐. 괜찮아요"
그의 품에 안기면서,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 속에, 거무칙칙하고 무거운 죄책감을 담은 채로---.
33. 여관
여관으로 향하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나는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눈 앞으로 낯선 경치가 슥슥 지나간다. 구비구비 산길.
벌써 한참을 비슷한 길만 달리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허벅지 위에 손이 올라 왔다.
"부인, 긴장하고 계신 겁니까?"
선생님이 슬금슬금 내 다리를 어루만지며 묻는다.
낯선 운전기사가 바로 앞에 있는데, 둘이서만 있을 때하고 별반 다르지 않은 말투였다. 대꾸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분명 선생님은 입 밖에 꺼내면 안 될 말까지 죄다 천역덕스럽게 떠들어 대고 말 테니까.
나는 "괜찮아요"라고 짧게 대답하고, 그의 시선을 피해 창 밖만 바라 보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내 반응 따위 상관없다는 듯 혼자 신이 나서 떠드는 것이었다.
"지금 가고 있는 온천 여관은 말이지요, 제 단골 여관이랍니다. 불임으로 고민하는 여성을 여태까지 스무 명 이상 모시고 갔습니다만... 부인, 거기 갔던 여성 중에, 임신에 성공한 여성의 비율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나는 '이제 그만 좀 떠드시죠'라는 의미로,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으로 받아 들이는 것 같았다.
"후후, 좋아요. 가르쳐 드리지요. 무려... 전원, 입니다. 거기 갔던 분들은, 전원 임신에 성공했답니다"
운전기사가 신경쓰여,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던 나였지만, 그 이야기에는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심코 짧은 감탄사를 토해내며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고 만다.
"당신도, 분명 임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가슴을 덥썩 움켜 쥐고는 그대로 세게 주무르기 시작한다.
"아앙..."
몸을 비틀면서 앞을 바라보자, 룸미러 너머로 운전기사와 시선이 마주치고 만다.
부인이라고 불리우면서, 불임으로 고민한다고 하는, 그러면서 가슴을 주무르는데도 전혀 저항하지 않는--- 대체 날 어떤 여자로 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후로도, 선생님은 내 몸을 계속해서 만져 댔다. 가슴을 주무르고, 다리를 비비고, 스커트 안에까지 손을 집어 넣고 입술을 덮쳐 왔다. 운전기사가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열어 "도착했습니다"라고 얘기할 때까지.
****************
'산골짜기 여관'이라는 이름의 그 온천 여관은, 이름 그대로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방으로 안내받은 나는, 선생님이 여주인으로 보이는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혼자 발코니로 나갔다.
나뭇결 무늬가 곱게 새겨진 난간에 팔을 짚고,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 본다.
주변에 초록 나무가 무성하고, 바로 아래에는 맑고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잎사귀와 잎사귀가 서로 스치는 소리,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사이사이로 새소리도 섞여 들려 온다.
크게 심호흡을 하자, 폐 안 가득 신선한 공기가 들어 왔다.
너무나 상쾌한 나머지,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도 잊고,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걸로 갈아 입어 주시겠어요?"
문득 깨달았을 땐, 선생님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여주인으로 보이던 그 사람은 이미 가고 없었다. 그가 손에 유카타를 쥐고 내 옆에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잠깐 정도는 느긋하게 내버려 둘 수도 있잖아요, 마음 속으로 삐죽거리며 한숨을 내쉰다.
분명 또 음란한 짓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면, 순순히 유카타를 받아 드는 것도 꺼려졌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는 내 기분 따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자기 계획을 바꿀 의사는 눈꼽만큼도 없다는 표정으로 유카타를 내미는 것이었다.
"아, 속옷은 입지 마세요. 어차피 바로 목욕 먼저 할테니까"
"......"
별 수 없이 유카타를 받아 든다.
선생님에게 반항 같은 건 아무 소용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역시, 오늘은 이제부터 무슨 짓을 당하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 지는 것이었다.
지금쯤, 남편은 집에서 혼자 외롭게 있을 텐데. 나는 선생님과 함께 혼욕 온천에 몸을 담그러 간다.
34. 혼욕
탈의실은 옥외에 있었다. 노천탕으로 연결되는 출입구를 빠져 나오면, 돌계단 옆으로 바구니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위 아래로 차곡히 쌓여 있는 바구니 안에, 옷가지며 유카타가 들어가 있다. 안에 벌써 십여명도 넘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다는 얘기겠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몸이 움츠러든다.
그렇지 않아도 혼욕은 처음인데, 게다가 오늘은 선생님하고 함께다. 무슨 꿍꿍이인지도 모르는 채로.
안에 여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어 주면 좋겠는데--- 그런 걸 다 속으로 빌고 있었다.
"자, 유카타 벗으세요"
옆에서 벌써 전라가 된 선생님이 채근한다. 타올 한 장만 손에 쥔 채로, 가릴 것도 없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남편한테는 검사가 있다고 해 놓구선, 나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이가 아닌 다른 남성과 마치 부부처럼 함께 여행을 와서, 알몸으로 같이 온천에 들어가다니...
---그러나 나는, 결국 선생님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허리 매듭을 풀고, 유카타 앞섶을 풀어 헤친다. 안에 속옷도 안 입고 있었다. 가슴, 배, 허벅지---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고, 단숨에 격렬한 배덕감에 휩싸인다.
그 때, 덜컹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유카타를 입은 남자 손님 하나가 거기 서 있었다.
나도 놀랐지만, 그 사람 역시도 굉장히 놀랐는지 한참을 그 자리에 그러고 서 있었다. 혼욕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정말로 여자가 있을 거라고는--- 그런 얼굴 표정으로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 본다.
나는 곧바로 시선을 피해,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막 벗으려던 유카타 앞섶을 황급히 다시 여민다.
내 딴에는, 그가 먼저 들어갈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어서 서두르세요"라며 채근하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남자는 멀찌기 떨어진 곳에 서서, 이쪽을 힐끔거리며 자기 바구니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각오를 다지고, 유카타를 벗었다. 스르륵 어깨를 드러내고, 한쪽씩 팔을 뽑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 피부가 두 남자 앞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벗은 유카타를 곱게 개어 바구니 안에 집어 넣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덮쳐 왔다. 마지막 한 장 남은 얇은 막마저도 벗겨진 기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방패가, 무엇 하나 남아있는 게 없는 것이다.
낯선 남자가 힐끗힐끗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마치 손으로 어루만지는 것처럼 피부 위를 기어 다닌다.
바구니 안에서 타올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선생님이 팔을 붙잡아 제지했다. 깜짝 놀라 뒤돌아 보자, 그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타올 따위로 가릴 필요 없어요--- 라는 의미일까.
나는 별 수 없이 팔을 내려, 왼손으로 가슴을, 오른손으로 다리 사이를 가리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몸을 돌렸다. 선생님의 뒤에 바짝 붙어, 노천탕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맨발로 걷는다.
훤히 드러난 등하고 엉덩이에 아플 정도로 시선이 느껴진다. 그저 기분 탓이 아니다. 뒤에서 그 사람이 잡아 먹을 듯이 내 육체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올 한 장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지금,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여기 있는 내내, 앞으로 나는 남자들의 음란한 시선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잠시 걷자, 곧 시야가 확 트이며 노천탕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좀 무서워져서, 선생님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안을 들여다 봤다.
꽤 커다란 온천이었다. 50명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만한 사이즈로, 중앙에는 거대한 검은색 바위가 우뚝 자리잡고 있었다.
남자 몇 사람---대부분이 선생님보다도 연상인 것 같은---이 그 바위에 등을 기대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머리 위에 타올을 접어 올려 놓은 사람, 얼굴을 싹싹 씻고 있는 사람, 제각각 느긋하게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면대도 꽤 넓어서, 열 명 이상이 동시에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남자 둘이 의자에 앉아 몸을 씻고 있었다.
보이는 사람이라곤 전부 중년 이상의 남자들 밖에 없었다. 반 이상이 노인에 가까운 고령자였다.
전부 12명. 아니, 바위 뒷쪽은 여기서 보이지 않으니까 좀 더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있다가 아까 그 남자도 들어올테니까 한 사람은 확실히 추가--- 결국 나이 지긋한 남자만 15명 정도 된다는 얘기.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인원수.
그 중에서, 여자는 나, 오직 한 사람.
젊다고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나 혼자 뿐이었다.
게다가 그 여자가 타올 한 장 몸에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완벽하게 알몸으로 여기 서 있었다.
애초에 여긴 온천이니까,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보통이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혼욕 온천이라고 하는 장소가 아니었다면, 범죄나 다름없는 그런 시츄에이션.
남탕에 잘못 들어온 여자--- 딱 그 짝이었다. 당황스러워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잔뜩 주눅이 든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서슴없이 성큼성큼 걸어가 버린다.
혼자 떨어져 있기가 무서워, 양손으로 앞을 가리면서 황급히 그 뒤를 쫓아 갔다.
더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새로 들어온 우리 두 사람에게 시선을 던진다. 혼욕이라곤 해도, 젊은 여자가 들어오는 경우는 좀처럼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눈을 빛내며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들. 심지어 휘파람까지 불며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른다.
************
세면대 양쪽으로 두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머리를 감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팔이며 다리며 몸 전체가 제대로 근육이 붙어 있는--- 50대 정도의 남성.
또 한 사람은 70대 혹은 80대 정도--- 아무튼 노인임에 분명한, 야윈 체구의 남성이었다. 그는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몸에 거품을 잔뜩 뒤집어 쓰고 거리낌없이 내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 앞에서 올 누드로 서 있다니, 여태까지 내 인생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득 뒤를 돌아보자, 더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열 명 남짓한 남자들---50대, 60대, 70대, 연령도 제각각, 뚱뚱하게 살이 찐 남자, 비쩍 야윈 남자, 아무튼 다들 제각각인 모습들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한결같이 머리숱이 옅다는 공통점이---이 전부 모여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얼른 다시 앞을 바라보며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등이며 엉덩이로 그들의 따가운 시선이 박혀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여기서 나갈 때까지, 이렇게 계속해서 남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할 수 밖에 없겠지...
선생님은 정확히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아, 샤워기를 틀어 더운 물을 뒤집어 쓰기 시작했다.
나도 그 옆으로 다가가, 온천에 들어가 앉아 있는 남자들의 시선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의자에 앉아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자그맣게 말자, 아주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이 누그러진다.
하지만---.
이러고 있으니까, 정말 나랑 선생님이 꼭 부부처럼 보인다. 분명,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한 여기 있는 사람들 전원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나에겐 진짜 남편이 있고,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일 뿐이다. 상황이 이러니까, 의지할 사람이 선생님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옆에 달라 붙어 있는 것 뿐인데...
본의는 아니었지만, 지금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해진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선생님이 타올에 비누를 묻혀 몸을 씻기 시작했다.
샤워기 물을 틀어 더운 물을 맞고 있었지만, 막상 타올이 없었다. 몸을 어떻게 씻어야 할지 몰라 곤란해하고 있었다.
하릴없이 애꿎은 발등에다 샤워기 물을 뿌리고 있는데, 저쪽 구석에서 몸을 씻고 있던 남성---야윈 노인 분 말이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걸어 왔다.
그가 내 옆에 앉더니, 거품이 잔뜩 묻어있는 타올을 내밀며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아가씨, 타올 안 가져 왔어요? 제가 씻겨 드릴까요?"
농담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선생님을 쳐다 봐도, 별 반응이 없다. 무슨 상황인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좋을대로 하시길'이라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자기 몸만 씻고 있었다. 일부러 이쪽을 무시하고 있는 느낌.
뭔가 분명히 이상했다.
우리를 부부로 생각하고 있다면, 절대로 이런 식으로 접근할 리 없었다. 옆에 남편이 뻔히 앉아 있는 알몸의 여성에게 '씻겨 드릴까요'라니... 게다가 한술 더떠, 남편 역을 하고 있는 선생님까지도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고---.
뭐, 굳이 말하자면, 알몸으로 타올도 챙기지 않고 혼욕 온천에 들어와 있는 나부터 애초에 비정상일테지만...
역시, 그런 건가.
선생님은 여기 단골이라고 했다. 여주인하고도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미 20명도 넘는 불임 여성을 데리고 왔다고도 했다.
"......"
만일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 곳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이쪽 사정을 알고 있는 것 아닐까---.
여태까지 여기에 온 20명도 넘는 여성들의 상대를 해 온 사람들이,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남자들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스물 몇 번째로, 불임 때문에 '여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여기 온 여자라면---.
공포에 질려,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 만다.
바로 옆으로 더 가까이, 노인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 왔다. 손에는, 자신의 몸을 씻었던 타올을 움켜 쥐고. 아직도 잔뜩 거품이 묻어있는---.
순간 뭐랄까, 그 타올이 엄청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기 몸 구석구석을 비벼댄 타올이다. 그걸, 거품을 씻어내지도, 빨지도 않고, 그대로 내게 내밀고 있었다.
"......"
선생님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자기 몸만 씻고 있었다.
'씻겨 달라고 하지 그래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분명, 선생님은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 이 상황이, 바로 이것이, 그가 나에게 베풀고 싶은 '치료'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얌전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노인이 더욱 가까이 다가와 앉아, 손에 쥔 타올을 내 어깨 위로 가져 갔다.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꾹 다물고, 꼼짝 않고 얌전히 받아 들였다.
그는 그런 내 모습에 만족했는지, 어깨서부터 등까지 젖은 타올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노인의 땀이랑 때가 잔뜩 묻어 있을 게 분명한 추잡스러운 거품이 내 피부에 와 닿는다.
히히히 하는 희미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노인은 얼굴 한 가득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름 투성이인 얼굴이 더 심하게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푸르른 하늘 아래, 초록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온천---. 그러나 우리 세 사람 주위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불쾌하고, 음란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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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언젠가 혼욕 온천도, 누드 비치도 가 본 적이 있는데, 정말로 젊은 여자는 없더라구요.
죄다 시커먼 늑대들 뿐. 간혹 가다 보이는 여자인간은 아줌... 내지는 할머...
결국 탱탱한 몸뚱이(?)를 감상(?)하며 즐긴 건 그녀들(?)이었다는...
ps2. 재밌는 글 써주시던 작가님 한 분이 또 떠나셨습니다ㅡㅜ...
결국 악플러들의 집요한 스토킹을 못 이기시고 아예 글을 싹 내리셨어요.
남들 재밌게 노는 꼴을 못 보는 변태들이야 아무리 뭐라 한들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 종자들이니 탓해봐야 주둥이 아니 손꾸락만 아프고... 암튼 아쉽습니다.
저야 워낙에 아오안이니 악플이나 쪽지테러라야봤자, 재수없는 변태 일빠색퀴 그렇게 네토라레만 존나게 긁어대다 마누라 확 씹창이나 나버려라~ 정도지만ㅋ
빗발치는 악플도 다 관심의 또다른 표현이라고 여기시고 작가님들 너무 상처받지 마시어요^^;;
게다가 해피해피한 먼치킨 메리수 할렘물보다는 아무래도 축축 늘어지는 네토라레물이 비토가 심하다는 건 감수해야지 않겠어요. 뭐랄까, 마이너의 숙명일진데.
ps3. 그나저나 단게로우스 속편은 맛만 보여주시고 언제 업뎃되는 거여요 로테 남친님?(응?)...엥? 그새 올라왔네요^^ 제목까지 싹 창씨개명하시고ㅋ
그나저나X2 아카리 팬픽 써주신다던 분은 감감무소식이고ㅡㅜ 히이잉...
토요일.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다행히 직장도 휴무여서, 우리 부부는 간만에 나들이를 나섰다.
최근 내가 '불임 치료'에 바빴던 탓도 있어서, 데이트 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가지는 기회였다. 하도 오랜만이라, 마치 학생시절로 타임 슬립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남편의 팔에 꼭 매달려 어딜 가든지 항상 붙어 다녔다.
둘이서 영화를 보고, 둘이서 식사를 하고, 둘이서 쇼핑을 하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자, 몇 년 만에 모처럼 러브 호텔로...
거울로 둘러싸인 벽과 천정. 유리벽으로 된 욕실과 화장실. 커다란 원형 침대 위에서 우리는 오랫만에 불타 올라 서로 뒤엉켰다.
요사이 선생님 앞에서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나는, 남편 앞에서도 여자가 될 수 있어서 기뻤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과 그런 굉장한 섹스를 체험해 버린 지금, 남편과의 섹스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확실히, 선생님과 했던 플레이만큼 격렬하지도 음란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사랑하는 남편의 존재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만족했다.
솔직히 말하면, 안심했고, 또 기쁘기도 했다.
몸과 마음 모두, 아직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그이와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마음속 깊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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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 째가 끝나고, 남편의 팔을 베고 누워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서로 맞대고, 여전히 거친 숨소리를 내며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것도 괜찮은데? 결혼하고 나서는 이런, 러브호텔 같은 데는 온 적 없잖아... 굉장히 흥분했어. 저기, 다음 주 주말에도 이렇게 데이트 하지 않을래?"
"응... 좋아, 근데, 다음 주는 좀 힘들 거 같아..."
"왜? 뭐 다른 약속이라도 있어?"
"...어라? 말 안 했었나? 다음 주 주말에 검사가 있다고..."
"아, 그러고 보니까 들은 것 같네... 병원에 입원하는 거야?"
"...응. 검사 입원. 딱 하룻밤만, 있다 올께..."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지금 너한테는 불임 치료가 제일 중요하니까"
"...미안"
여러가지 의미를 담은 '미안'이었다.
물론, 그이는 그 의미까지 알지는 못하지만.
"아냐, 지금 너한테는 병원이 우선이니까. 괜찮아. 그럼 다다음 주로 하지 뭐. 불임이 다 나으면, 또 얼마든지 데이트 할 수 있으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도 상관없고"
"응..."
남편하고 이렇게 살을 맞대고 꼭 부둥켜 안고 있어도, 마음 속이 따끔따끔 아파 왔다.
그렇다. 검사 입원 따위 순 거짓말이다. 남편에게는 그렇게 말해두는 편이 낫다고 선생님이 시켰을 뿐이다.
나는 다음 주 주말, 남편에겐 도저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 선생님에 의해서.
나를 숙박까지 시켜가며 끌어내는 걸 보면, 분명히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단히 끝날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한 말이 기억난다.
분명 이렇게 말했다.
"---아는 사람이 온천 여관을 경영하고 있어서요. 거기 아주 훌륭한 혼욕 온천이 있습니다. 커다란 사우나도 있는데, 거기도 역시 혼욕이라네요. 신기하죠? 요새 열심히 치료에 힘쓰고 있는데도, 전혀 증상이 나아지질 않아서, 좀 더 제대로 여성호르몬을 분비시킬 방법을 찾아 봤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묵을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고 준비해 오세요. 아, 신랑한테는 검사 입원이 있다고 말해두면 될 겁니다"
꾸욱하고 자궁이 쑤셔 온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오늘 하루 종일 남편 옆에 붙어 다니고, 여기 와서는 벌써 두 차례나 서로 사랑을 나눴는데---.
그런데도, 내 몸은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다음 주 주말에 어떤 일을 당할 건지 상상하는 순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해 버리는 것이었다.
"응? 왜 그래?"
걱정이 가득한 그의 얼굴 표정.
그렇다고, 사실을 털어 놓을 수는 없었다.
"으응, 아무 것도 아냐. 괜찮아요"
그의 품에 안기면서,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 속에, 거무칙칙하고 무거운 죄책감을 담은 채로---.
33. 여관
여관으로 향하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나는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눈 앞으로 낯선 경치가 슥슥 지나간다. 구비구비 산길.
벌써 한참을 비슷한 길만 달리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허벅지 위에 손이 올라 왔다.
"부인, 긴장하고 계신 겁니까?"
선생님이 슬금슬금 내 다리를 어루만지며 묻는다.
낯선 운전기사가 바로 앞에 있는데, 둘이서만 있을 때하고 별반 다르지 않은 말투였다. 대꾸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분명 선생님은 입 밖에 꺼내면 안 될 말까지 죄다 천역덕스럽게 떠들어 대고 말 테니까.
나는 "괜찮아요"라고 짧게 대답하고, 그의 시선을 피해 창 밖만 바라 보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내 반응 따위 상관없다는 듯 혼자 신이 나서 떠드는 것이었다.
"지금 가고 있는 온천 여관은 말이지요, 제 단골 여관이랍니다. 불임으로 고민하는 여성을 여태까지 스무 명 이상 모시고 갔습니다만... 부인, 거기 갔던 여성 중에, 임신에 성공한 여성의 비율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나는 '이제 그만 좀 떠드시죠'라는 의미로,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으로 받아 들이는 것 같았다.
"후후, 좋아요. 가르쳐 드리지요. 무려... 전원, 입니다. 거기 갔던 분들은, 전원 임신에 성공했답니다"
운전기사가 신경쓰여,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던 나였지만, 그 이야기에는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심코 짧은 감탄사를 토해내며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고 만다.
"당신도, 분명 임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가슴을 덥썩 움켜 쥐고는 그대로 세게 주무르기 시작한다.
"아앙..."
몸을 비틀면서 앞을 바라보자, 룸미러 너머로 운전기사와 시선이 마주치고 만다.
부인이라고 불리우면서, 불임으로 고민한다고 하는, 그러면서 가슴을 주무르는데도 전혀 저항하지 않는--- 대체 날 어떤 여자로 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후로도, 선생님은 내 몸을 계속해서 만져 댔다. 가슴을 주무르고, 다리를 비비고, 스커트 안에까지 손을 집어 넣고 입술을 덮쳐 왔다. 운전기사가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열어 "도착했습니다"라고 얘기할 때까지.
****************
'산골짜기 여관'이라는 이름의 그 온천 여관은, 이름 그대로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방으로 안내받은 나는, 선생님이 여주인으로 보이는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혼자 발코니로 나갔다.
나뭇결 무늬가 곱게 새겨진 난간에 팔을 짚고,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 본다.
주변에 초록 나무가 무성하고, 바로 아래에는 맑고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잎사귀와 잎사귀가 서로 스치는 소리,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사이사이로 새소리도 섞여 들려 온다.
크게 심호흡을 하자, 폐 안 가득 신선한 공기가 들어 왔다.
너무나 상쾌한 나머지,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도 잊고,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걸로 갈아 입어 주시겠어요?"
문득 깨달았을 땐, 선생님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여주인으로 보이던 그 사람은 이미 가고 없었다. 그가 손에 유카타를 쥐고 내 옆에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잠깐 정도는 느긋하게 내버려 둘 수도 있잖아요, 마음 속으로 삐죽거리며 한숨을 내쉰다.
분명 또 음란한 짓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면, 순순히 유카타를 받아 드는 것도 꺼려졌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는 내 기분 따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자기 계획을 바꿀 의사는 눈꼽만큼도 없다는 표정으로 유카타를 내미는 것이었다.
"아, 속옷은 입지 마세요. 어차피 바로 목욕 먼저 할테니까"
"......"
별 수 없이 유카타를 받아 든다.
선생님에게 반항 같은 건 아무 소용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역시, 오늘은 이제부터 무슨 짓을 당하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 지는 것이었다.
지금쯤, 남편은 집에서 혼자 외롭게 있을 텐데. 나는 선생님과 함께 혼욕 온천에 몸을 담그러 간다.
34. 혼욕
탈의실은 옥외에 있었다. 노천탕으로 연결되는 출입구를 빠져 나오면, 돌계단 옆으로 바구니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위 아래로 차곡히 쌓여 있는 바구니 안에, 옷가지며 유카타가 들어가 있다. 안에 벌써 십여명도 넘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다는 얘기겠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몸이 움츠러든다.
그렇지 않아도 혼욕은 처음인데, 게다가 오늘은 선생님하고 함께다. 무슨 꿍꿍이인지도 모르는 채로.
안에 여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어 주면 좋겠는데--- 그런 걸 다 속으로 빌고 있었다.
"자, 유카타 벗으세요"
옆에서 벌써 전라가 된 선생님이 채근한다. 타올 한 장만 손에 쥔 채로, 가릴 것도 없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남편한테는 검사가 있다고 해 놓구선, 나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이가 아닌 다른 남성과 마치 부부처럼 함께 여행을 와서, 알몸으로 같이 온천에 들어가다니...
---그러나 나는, 결국 선생님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허리 매듭을 풀고, 유카타 앞섶을 풀어 헤친다. 안에 속옷도 안 입고 있었다. 가슴, 배, 허벅지---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고, 단숨에 격렬한 배덕감에 휩싸인다.
그 때, 덜컹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유카타를 입은 남자 손님 하나가 거기 서 있었다.
나도 놀랐지만, 그 사람 역시도 굉장히 놀랐는지 한참을 그 자리에 그러고 서 있었다. 혼욕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정말로 여자가 있을 거라고는--- 그런 얼굴 표정으로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 본다.
나는 곧바로 시선을 피해,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막 벗으려던 유카타 앞섶을 황급히 다시 여민다.
내 딴에는, 그가 먼저 들어갈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어서 서두르세요"라며 채근하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남자는 멀찌기 떨어진 곳에 서서, 이쪽을 힐끔거리며 자기 바구니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각오를 다지고, 유카타를 벗었다. 스르륵 어깨를 드러내고, 한쪽씩 팔을 뽑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 피부가 두 남자 앞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벗은 유카타를 곱게 개어 바구니 안에 집어 넣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덮쳐 왔다. 마지막 한 장 남은 얇은 막마저도 벗겨진 기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방패가, 무엇 하나 남아있는 게 없는 것이다.
낯선 남자가 힐끗힐끗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마치 손으로 어루만지는 것처럼 피부 위를 기어 다닌다.
바구니 안에서 타올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선생님이 팔을 붙잡아 제지했다. 깜짝 놀라 뒤돌아 보자, 그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타올 따위로 가릴 필요 없어요--- 라는 의미일까.
나는 별 수 없이 팔을 내려, 왼손으로 가슴을, 오른손으로 다리 사이를 가리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몸을 돌렸다. 선생님의 뒤에 바짝 붙어, 노천탕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맨발로 걷는다.
훤히 드러난 등하고 엉덩이에 아플 정도로 시선이 느껴진다. 그저 기분 탓이 아니다. 뒤에서 그 사람이 잡아 먹을 듯이 내 육체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올 한 장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지금,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여기 있는 내내, 앞으로 나는 남자들의 음란한 시선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잠시 걷자, 곧 시야가 확 트이며 노천탕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좀 무서워져서, 선생님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안을 들여다 봤다.
꽤 커다란 온천이었다. 50명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만한 사이즈로, 중앙에는 거대한 검은색 바위가 우뚝 자리잡고 있었다.
남자 몇 사람---대부분이 선생님보다도 연상인 것 같은---이 그 바위에 등을 기대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머리 위에 타올을 접어 올려 놓은 사람, 얼굴을 싹싹 씻고 있는 사람, 제각각 느긋하게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면대도 꽤 넓어서, 열 명 이상이 동시에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남자 둘이 의자에 앉아 몸을 씻고 있었다.
보이는 사람이라곤 전부 중년 이상의 남자들 밖에 없었다. 반 이상이 노인에 가까운 고령자였다.
전부 12명. 아니, 바위 뒷쪽은 여기서 보이지 않으니까 좀 더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있다가 아까 그 남자도 들어올테니까 한 사람은 확실히 추가--- 결국 나이 지긋한 남자만 15명 정도 된다는 얘기.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인원수.
그 중에서, 여자는 나, 오직 한 사람.
젊다고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나 혼자 뿐이었다.
게다가 그 여자가 타올 한 장 몸에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완벽하게 알몸으로 여기 서 있었다.
애초에 여긴 온천이니까,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보통이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혼욕 온천이라고 하는 장소가 아니었다면, 범죄나 다름없는 그런 시츄에이션.
남탕에 잘못 들어온 여자--- 딱 그 짝이었다. 당황스러워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잔뜩 주눅이 든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서슴없이 성큼성큼 걸어가 버린다.
혼자 떨어져 있기가 무서워, 양손으로 앞을 가리면서 황급히 그 뒤를 쫓아 갔다.
더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새로 들어온 우리 두 사람에게 시선을 던진다. 혼욕이라곤 해도, 젊은 여자가 들어오는 경우는 좀처럼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눈을 빛내며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들. 심지어 휘파람까지 불며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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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 양쪽으로 두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머리를 감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팔이며 다리며 몸 전체가 제대로 근육이 붙어 있는--- 50대 정도의 남성.
또 한 사람은 70대 혹은 80대 정도--- 아무튼 노인임에 분명한, 야윈 체구의 남성이었다. 그는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몸에 거품을 잔뜩 뒤집어 쓰고 거리낌없이 내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 앞에서 올 누드로 서 있다니, 여태까지 내 인생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득 뒤를 돌아보자, 더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열 명 남짓한 남자들---50대, 60대, 70대, 연령도 제각각, 뚱뚱하게 살이 찐 남자, 비쩍 야윈 남자, 아무튼 다들 제각각인 모습들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한결같이 머리숱이 옅다는 공통점이---이 전부 모여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얼른 다시 앞을 바라보며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등이며 엉덩이로 그들의 따가운 시선이 박혀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여기서 나갈 때까지, 이렇게 계속해서 남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할 수 밖에 없겠지...
선생님은 정확히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아, 샤워기를 틀어 더운 물을 뒤집어 쓰기 시작했다.
나도 그 옆으로 다가가, 온천에 들어가 앉아 있는 남자들의 시선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의자에 앉아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자그맣게 말자, 아주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이 누그러진다.
하지만---.
이러고 있으니까, 정말 나랑 선생님이 꼭 부부처럼 보인다. 분명,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한 여기 있는 사람들 전원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나에겐 진짜 남편이 있고,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일 뿐이다. 상황이 이러니까, 의지할 사람이 선생님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옆에 달라 붙어 있는 것 뿐인데...
본의는 아니었지만, 지금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해진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선생님이 타올에 비누를 묻혀 몸을 씻기 시작했다.
샤워기 물을 틀어 더운 물을 맞고 있었지만, 막상 타올이 없었다. 몸을 어떻게 씻어야 할지 몰라 곤란해하고 있었다.
하릴없이 애꿎은 발등에다 샤워기 물을 뿌리고 있는데, 저쪽 구석에서 몸을 씻고 있던 남성---야윈 노인 분 말이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걸어 왔다.
그가 내 옆에 앉더니, 거품이 잔뜩 묻어있는 타올을 내밀며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아가씨, 타올 안 가져 왔어요? 제가 씻겨 드릴까요?"
농담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선생님을 쳐다 봐도, 별 반응이 없다. 무슨 상황인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좋을대로 하시길'이라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자기 몸만 씻고 있었다. 일부러 이쪽을 무시하고 있는 느낌.
뭔가 분명히 이상했다.
우리를 부부로 생각하고 있다면, 절대로 이런 식으로 접근할 리 없었다. 옆에 남편이 뻔히 앉아 있는 알몸의 여성에게 '씻겨 드릴까요'라니... 게다가 한술 더떠, 남편 역을 하고 있는 선생님까지도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고---.
뭐, 굳이 말하자면, 알몸으로 타올도 챙기지 않고 혼욕 온천에 들어와 있는 나부터 애초에 비정상일테지만...
역시, 그런 건가.
선생님은 여기 단골이라고 했다. 여주인하고도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미 20명도 넘는 불임 여성을 데리고 왔다고도 했다.
"......"
만일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 곳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이쪽 사정을 알고 있는 것 아닐까---.
여태까지 여기에 온 20명도 넘는 여성들의 상대를 해 온 사람들이,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남자들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스물 몇 번째로, 불임 때문에 '여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여기 온 여자라면---.
공포에 질려,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 만다.
바로 옆으로 더 가까이, 노인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 왔다. 손에는, 자신의 몸을 씻었던 타올을 움켜 쥐고. 아직도 잔뜩 거품이 묻어있는---.
순간 뭐랄까, 그 타올이 엄청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기 몸 구석구석을 비벼댄 타올이다. 그걸, 거품을 씻어내지도, 빨지도 않고, 그대로 내게 내밀고 있었다.
"......"
선생님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자기 몸만 씻고 있었다.
'씻겨 달라고 하지 그래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분명, 선생님은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 이 상황이, 바로 이것이, 그가 나에게 베풀고 싶은 '치료'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얌전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노인이 더욱 가까이 다가와 앉아, 손에 쥔 타올을 내 어깨 위로 가져 갔다.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꾹 다물고, 꼼짝 않고 얌전히 받아 들였다.
그는 그런 내 모습에 만족했는지, 어깨서부터 등까지 젖은 타올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노인의 땀이랑 때가 잔뜩 묻어 있을 게 분명한 추잡스러운 거품이 내 피부에 와 닿는다.
히히히 하는 희미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노인은 얼굴 한 가득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름 투성이인 얼굴이 더 심하게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푸르른 하늘 아래, 초록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온천---. 그러나 우리 세 사람 주위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불쾌하고, 음란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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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언젠가 혼욕 온천도, 누드 비치도 가 본 적이 있는데, 정말로 젊은 여자는 없더라구요.
죄다 시커먼 늑대들 뿐. 간혹 가다 보이는 여자인간은 아줌... 내지는 할머...
결국 탱탱한 몸뚱이(?)를 감상(?)하며 즐긴 건 그녀들(?)이었다는...
ps2. 재밌는 글 써주시던 작가님 한 분이 또 떠나셨습니다ㅡㅜ...
결국 악플러들의 집요한 스토킹을 못 이기시고 아예 글을 싹 내리셨어요.
남들 재밌게 노는 꼴을 못 보는 변태들이야 아무리 뭐라 한들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 종자들이니 탓해봐야 주둥이 아니 손꾸락만 아프고... 암튼 아쉽습니다.
저야 워낙에 아오안이니 악플이나 쪽지테러라야봤자, 재수없는 변태 일빠색퀴 그렇게 네토라레만 존나게 긁어대다 마누라 확 씹창이나 나버려라~ 정도지만ㅋ
빗발치는 악플도 다 관심의 또다른 표현이라고 여기시고 작가님들 너무 상처받지 마시어요^^;;
게다가 해피해피한 먼치킨 메리수 할렘물보다는 아무래도 축축 늘어지는 네토라레물이 비토가 심하다는 건 감수해야지 않겠어요. 뭐랄까, 마이너의 숙명일진데.
ps3. 그나저나 단게로우스 속편은 맛만 보여주시고 언제 업뎃되는 거여요 로테 남친님?(응?)...엥? 그새 올라왔네요^^ 제목까지 싹 창씨개명하시고ㅋ
그나저나X2 아카리 팬픽 써주신다던 분은 감감무소식이고ㅡㅜ 히이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