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녀 - 27부
삭신이 욱신욱신 거려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혜림이 누나가 섹스 하자고 전화했다. 어제 민기 형과 만나기 전에도 잠깐 만나 섹스를 해줬지만 혜림이 누나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요즘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섹스 해달라고 조르는 혜림이 누나 때문에 몸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몸이 말이 아닌지라 마냥 쉬고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혜림이 누나는 계속해서 졸라댔고, 나는 짜증이 나서 역정을 냈다. 그랬더니 이제는 작전을 바꿔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나오라고 했다. 술수가 빤히 보였다. 일단 만나서 어디서든 내 자지를 빨아 세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난 혜림이 누나를 섹스에 환장한 여자라고 몰아세웠다. 끝까지 거짓말이 아니라며 정말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말하는 혜림이 누나에게 속는 셈 치고 나간다고 대신 우리 동네까지 오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그게 거짓이었다면 다시는 안 볼 생각이었다.
누워서 쉬고 있다가 혜림이 누나가 우리 집 근처 커피전문점에 있다고 전화해서 그 쪽으로 나갔다.
혜림이 누나는 할 말이 없었던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재촉해도 뜸만 들이고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할 말이 뭐야?”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디서부터든 말 해.”
“나 진구랑 헤어졌어.”
“잘 됐네. 걔는 아니었어.”
혜림이 누나의 전화가 울렸지만 혜림이 누나는 바로 수신거부를 했다. 혜림이 누나가 다시 말을 이어가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다시 전화가 와서 나는 받으라고 했다. 혜림이 누나는 내 눈치를 보더니 전화를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혜림이 누나는 통화를 하면서도 계속 내 눈치를 봤다.
“나 지금 바빠.”
급한 일 있음 그 일 보러 가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난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서 집에 가서 쉬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눈짓으로 지금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혜림이 누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통화를 계속 했다.
“한 시간 쯤 뒤?”
날 한 시간이나 붙잡아놓겠다는 소리가 아니기를 바랐다.
“근데 왜 그런 데서 봐?”
피식 웃음이 났다. 혜림이 누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머릿속으로 대꾸하고 있는 내 모습이 웃겼다.
“알았어. 갈 때 전화할게.”
혜림이 누나는 전화를 끊고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얘기했다.
“할 얘기 남았어?”
“응. 너 혹시 내가 섹스에 미친 여자로 보여?”
“요즘에는 좀 그렇게 보여.”
“진구랑 헤어진 거 너 때문이야.”
나는 그저 혜림이 누나의 말이 나와 실컷 섹스하고 싶어서 진구 형이랑 헤어졌다는 소리로밖에는 들렸다. 그렇다면 진짜 섹스에 미쳤다는 말인가.
“너랑 섹스 하는 거 좋은 건 인정할게. 그렇다고 섹스에 환장해서 허구한 날 널 불러 섹스한 건 아냐. 내가 널 볼 수 있는 방법은 그거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그랬던 거야.”
또 한 번 일이 꼬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섹스 파트너는 서로의 몸을 사랑하면 되는 것으로 끝이어야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데 혜림이 누나는 그것을 넘어선 것 같았다.
“더 들어야 돼?”
“시작한 거 끝까지 얘기할게. 나 너 사랑해.”
예상했던 얘기였어도 직접 들으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좋은 말로 달래는 것은 혜림이 누나를 위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기대감 따위는 애초에 심어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차갑게 말했다.
“너 착각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속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런 식으로는 말하지 마.”
“지금 네 마음은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돼.”
“내가 바보야? 그런 것도 구분 못하게.”
바보가 아니라면 날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도 자신과 섹스를 즐기는 그런 남자를 보통의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상식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나 여자친구 있는 거 알잖아. 그것도 둘씩이나. 게다가 한 명은 네 친구야.”
“넌 여자친구의 친구를 건드렸잖아. 게다가 두 명이나.”
“두 명이라니?”
“내가 모를 줄 알았니? 네가 유리한테 했던 행동들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날 사랑한다는 건 더 말이 안 되잖아.”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게 사랑이야.”
“널 위해 충고하는데 앞으로는 그런 사랑하지 마.”
“내 사랑 갖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할 거면 날 사랑하지 않았어야 했다. 내가 관련되지 않은 문제였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남 얘기하듯 툭 던졌다.
“그럴 거면 나한테 얘기하지 말았어야지.”
혜림이 누나는 할 말을 잃었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알겠어? 이게 너를 대하는 진짜 나야. 내가 널 가질 때 했던 달콤한 말들은 너한테 한 게 아니라 네 몸에 한 거야. 더 정확히 말해줄까? 네 보지에 했던 말들이라고. 내 자지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바로 네 보지에게!”
혜림이 누나는 드라마를 많이 봤나보다. 내게 물을 끼얹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뿌릴 거면 제대로 얼굴에 뿌리든지, 물의 반은 내 티셔츠를 적셨다. 우리 동네였기에 망정이지 멀리서 이 꼴을 당했다면 젖은 채로 한참을 올 뻔 했다. 그래도 혜림이 누나가 확실히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생각에 기분은 홀가분했다.
* * *
왜 이렇게 날 찾는 선배들이 많은 건지 민기 형과 혜림이 누나에 이어 오늘은 유리 누나였다. 몸도 제법 가벼워진 거 같아 흔쾌히 수락했고 학교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멀리 유리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남자들은 꼭 한 번씩 유리 누나를 쳐다보았다.
엊그제, 그리고 어제 들은 예상치 못한 소식에 오늘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 얘기가 나올까 기대를 하며 유리 누나의 앞으로 갔다. 유리 누나의 표정을 보니 좋지 못한 소식이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기대감은 사라지고 살짝 긴장이 되었다.
“혹시 혜림이한테 얘기 들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들었던 걸 복습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네.”
“들었구나. 소연이는 아무 말도 안 해?”
“소연이요? 소연이한테는 말 안 했는데요.”
“혹시 민기가 소연이한테 연락했다거나 그러지 않았냐고.”
나는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어리둥절해 고개를 기우뚱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민기 형이 소연이한테 왜 연락해요?”
“너는 혜림이한테 뭘 들었다는 거야?”
“혜림이 누나가 절 좋아한다는 거랑 진구 형이랑 헤어졌다는 얘기요.”
“정말?”
놀란 얼굴로 오히려 나에게 되묻고 있는 유리 누나를 보니 기분 나쁜 기운이 내 몸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누나는 무슨 얘긴데요?”
“민기가 혜림이 강간했어.”
“네?”
내가 화들짝 놀라 목소리를 높이자 유리 누나는 내 팔을 잡고 말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 들어가서 얘기하자.”
“다시 한 번 말해보세요. 내가 잘못 들은 거죠?”
“딴 데 가서 얘기하자니까.”
나는 유리 누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시 얘기해보라고!”
“민기가 혜림이 강간했다고.”
“그 개새끼 지금 어디 있어?”
“몰라.”
나는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민기 형에게 전화를 거는 내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참만에야 전화를 받은 민기 형의 목소리는 여유로웠다.
[그래, 윤호냐?]
“너 이 개새끼 어디야?”
[너 형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어딘지만 말해, 개새끼야.”
[여기 모텔인데 올래?]
“어디, 무슨 모텔 몇 호야?”
[엊그제 네가 나한테 좆나 맞았던 모텔 402호다.]
나는 전화를 끊고 달렸다. 이 거지 같은 새끼는 왜 이렇게 모텔을 좋아하는지 또 모텔이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침대 위에서 혜림이 누나가 엎드린 자세로 민기 형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로 민기 형의 자지를 받아들이며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왔냐? 먼저 시작했…….”
내 발길질에 민기 형은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혜림이 누나는 침대 머리맡으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았다. 민기 형은 자지를 덜렁거리며 일어났다.
“이 새끼가 미쳤나? 이 좆밥 새끼가.”
민기 형은 내게 달려들었고, 나는 민기 형을 잡아 업어치기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민기 형은 꿈틀꿈틀 대며 일어나려고 했다. 겨우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려는 민기 형의 얼굴을 나는 발리슛을 하듯 걷어찼다. 민기 형은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엄살 피우지 마, 개새끼야. 아직 많이 남았어.”
언제 들어왔는지 유리 누나가 내 앞에 가로막으며 말했다.
“윤호야, 진정해. 일단 진정하자. 응?”
“꼴에 저 새끼 여자친구라고 감싸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네가 지금 너무 흥분한 거 같아서 그래. 일단 흥분부터 가라앉히고 얘기하자.”
난 혜림이 누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넌 뭐 좋다고 대주고 있냐?”
혜림이 누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혜림이한테 왜 그래? 혜림이는 하고 싶어서 했겠어?”
나는 악을 쓰고 마음대로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풀었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는 것 같았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던 화는 조금 풀어졌다.
“그럼 이제 얘기해봐. 어떻게 된 건지.”
유리 누나는 침대로 가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쟤가 나오래서 싫다고 했는데 안 나오면 내 사진이랑 동영상 인터넷에 뿌릴 거라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갔어. 그래서 어제도 이 모텔에 왔었어. 섹스 하려고 하기에 사진, 동영상 줄 때까지 안 할 거라고 했지. 그랬다가 몇 대 맞고 결국 강제로 섹스도 했어. 섹스를 하는 동안에도 수없이 맞았어. 신음소리 안 낸다는 둥 신음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둥 거기를 안 조인다는 둥 물이 적다는 둥 온갖 핑계로 때렸어. 처음에는 아프니까, 맞으면 너무 아프니까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어.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웠어. 점점 미친놈이 되어 가는 거 같았거든.”
유리 누나는 어제의 악몽 같던 시간이 떠올랐는지 울컥 했다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키려 했다. 나는 유리 누나를 보채지 않았다.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나도 자리에 앉아 일단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들으려 했다.
“저 미친놈이 혜림이를 부르라고 했어. 부르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저 미친놈의 매질 때문에…….”
유리 누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미안해, 혜림아 내가 미안해. 너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어.”
유리 누나도 울고, 혜림이 누나도 울었다. 혜림이 누나는 유리 누나에게 다가가서 안아주었고, 둘은 펑펑 울었다.
“괜찮아. 울지 마. 난 괜찮아.”
울지 말라는 혜림이 누나도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눈물을 보고 있자니 나도 눈시울이 붉어지려 했다. 난 그 모습을 감추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민기 형을 발로 두어 차례 걷어찼다.
“윤호야, 그만해. 나 계속 얘기할 거야.”
유리 누나는 애써 울음을 삼키며 얘기를 이어가려 했지만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안 들어도 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됐어. 이제 얘기 안 해도 돼.”
그 순간 옆구리에 통증에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옆으로 나뒹굴었다. 뒤이어 얼굴에 커다란 충격이 왔고 나는 또 바닥에 쓰러졌다.
“씨발새끼야. 좆같은 새끼가 어디서 까불어? 죽으려고.”
민기 형의 발길질이 이어졌고, 유리 누나가 소리를 지르며 민기 형에게 달려들었다. 덕분에 나는 민기 형의 발길질을 면할 수 있었지만 유리 누나는 민기 형에게 몇 차례 얻어맞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씨발년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나는 일어나서 민기 형에게 대항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머리가 띵한 게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혜림이 누나가 달려들어 민기 형의 뒤통수를 갈겼다. 민기 형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쌍욕을 퍼부으며 혜림이 누나를 가차 없이 두들겨 팼다.
“이것들이 단체로 죽고 싶어 환장했어?”
민기 형은 다시 내게 오더니 날 툭툭 차며 말했다.
“씹새끼야, 너는 내 보지 막 박아대면서 내가 하는 건 아니꼽냐? 내 보지 내가 박고, 나도 너처럼 네 보지 좀 먹겠다는데 왜 지랄이냐? 아, 씨발 네 보지도 아니지? 근데 왜 지랄이냐고!”
나는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섣불리 일어나지 않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내가 씨발 혼자 먹겠대? 같이 먹자고 불러줬으면 고맙습니다 하고 먹을 것이지 어디서 지랄발광이냐고.”
민기 형은 내 어깨를 밟았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민기 형의 발을 붙들고 벌떡 일어났다. 민기 형은 중심을 잡지 못해 기우뚱했고, 나는 바닥을 딛고 있는 다리를 걷어차 민기 형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바로 달려들어 조르기 기술을 걸었다. 민기 형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빠져나오려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나는 민기 형을 기절시킬 생각은 없었다. 단지 고통만 주고 싶었다. 그래서 기절할 때 쯤 살짝 풀어주고 다시 조이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죽겠다.”
유리 누나가 말리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했을 것이다. 나는 몸을 털고 있어났고, 민기 형은 목을 감싸 쥐고 콜록 거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저 새끼 어떻게 해줄까? 죽여줄까? 아님 강간범으로 넘길까?”
“씨발, 강간범은 내가 무슨 강간범이야?”
“아직 정신 못 차렸나보네.”
“저 년한테 물어봐. 좋다고 보짓물 흘리고 신음소리 질렀는지 안 질렀는지.”
“미친 새끼.”
“씨발년아, 넌 가만있어. 어차피 씨발 네 보지는 내 거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잖아.”
“미친 새끼야, 내 보지가 왜 네 거야?”
“주둥이 다물고 있어라. 나중에 진짜 주둥이 찢어버린다.”
유리 누나와 민기 형이 쌍욕을 섞어가며 싸우고 있는 동안 혜림이 누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앉아있었다. 나는 설마 하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혜림이 누나를 외면하고 머릿속에서 하고 있는 상상을 애써 지우려고 노력했다.
“유리 누나, 저 딴 놈이랑 그만 싸우고 어떡할까?”
“마음 같아서는 콩밥 먹이고 싶은데, 그래도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혜림이는 학교생활 힘들어하지 않을까?”
“그럼 그냥 여기서 죽일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죽어? 씨발새끼들아.”
나는 자꾸 우리 얘기에 끼어들어 조잘대는 민기 형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 입을 뻥 차버렸다.
“그만 나불대라.”
“엿 먹이고 싶은데 딱히 생각이 안 나.”
“이대로 묶어서 매달아놓을까?”
유리 누나는 농담으로 한 내 말이 맘에 들었는지 눈을 번쩍였다.
“좋은 생각이다. 묶어서 사람들 다 보게 하자.”
“진짜?”
“응. 괜찮은 생각 같아. 사진이랑 동영상도 찍어놓고.”
“야, 한유리. 너 나중에 나 어떻게 보려고 그렇게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우리는 민기 형의 말이 들리지 않는 마냥 쳐다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눈썹 한 올 꿈틀하지 않았다.
“맞다. 누나 사진이랑 동영상도 있다며?”
“어제 저 미친놈이 거짓말이었대.”
나는 민기 형을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사람을 보듯 쳐다보며 말했다.
“참 너도 가지가지 했다.”
“근데 묶을 게 있나?”
유리 누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묶을 만한 것들을 찾았다. 나도 주위를 둘러봤지만 방 안에는 끈으로 쓸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이건 어때?”
유리 누나가 집어든 건 민기 형의 옷이었다. 청바지는 별로였지만 셔츠는 나쁘지 않았다.
“근데 진짜 할 거야?”
“당연한 거 아냐? 묶어서 밖에 내던져 놓을 거야.”
유리 누나의 독기를 품은 눈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때 민기 형은 일어나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였고, 나는 바로 얼굴을 걷어 차버렸다. 민기 형은 다시 고꾸라져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근데 청바지로는 잘 안 묶일 거 같은데 손, 발 묶으려면 두 개는 있어야 하잖아.”
내 말에 유리 누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셔츠를 잡고 찢으려고 했다. 유리 누나의 완력으로는 셔츠를 찢기 힘들어보였다. 나는 손을 내밀어 유리 누나에게 셔츠를 달라고 했다. 나는 셔츠를 두 쪼가리로 나누었다.
내가 민기 형에게 다가가니 민기 형은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다.
“야이 미친 새끼들아, 너희 제 정신이야?”
유리 누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도 당해봐야 알겠지. 성적 수치심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유리야, 그만 하자. 내가 잘못했다.”
나는 민기 형의 팔을 잡고 묶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민기 형은 누운 상태에서 계속해서 반항했고, 급기야 주먹을 내 얼굴에 날렸다. 무게가 실리지 않아 별 타격을 없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조르기 기술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기절시킬 목적으로 말이다.
민기 형의 발버둥은 이내 잠잠해졌다. 나는 민기 형이 기절한 틈을 타 손을 묶고 민기 형을 깨웠다. 그리고는 완전히 정신이 들기 전에 발까지 묶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무릎 꿇고 빌 테니까 한 번만 봐줘.”
급기야 민기 형은 눈물까지 보였다. 나는 동정심이 들어 봐줄까 생각도 했지만 유리 누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지 민기 형의 뺨을 갈겼다.
“움직이지 마. 사진 예쁘게 찍어줄 테니까.”
유리 누나는 핸드폰을 꺼내 손발이 묶여 있는 나체사진을 여러 각도로 찍고 또 찍었다. 아마도 수십 장은 찍는 것 같았다.
“씨발, 그래. 다 찍어라. 그리고 나중에 보자, 한유리. 내가 네 보지 찢어서 찍어줄 테니까.”
민기 형은 최후의 발광을 했다. 유리 누나는 민기 형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미소 지었다.
“아직까지 반성하지 않고 있나 봐요. 제 전남친님. 반성하는 모습 보이면 봐줄까도 생각해보려 했는데.”
“아니야, 유리야. 나 반성하고 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내가 죽일 놈이야. 그러니까 한 번만 봐줘. 응?”
“봐줄까?”
“그래. 한 번만 봐주면 나 정말 항상 너한테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 테니까 제발 한 번만 봐줘.”
유리 누나는 민기 형 옆에서 일어나 침대로 가서 앉았다.
“봐줄게. 대신 여기까지 기어와서 내 발 핥아.”
독한 여자였다. 무서울 정도로 독했다. 그것도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섬뜩했다. 내가 저런 여자를 강간할 생각을 했었다니 안 하길, 아니 안 할 수 있게 된 게 천만다행이었다.
“미친년, 개지랄을 한다. 네 보지 쌈이나 싸먹어.”
“기어와서 내 발 핥는 게 그 꼴로 길거리 한복판에 있는 것 보다 치욕스러운가봐?”
“아니야, 아니야. 내가 잘못 생각했어. 할게. 해. 나 지금 기어가고 있어.”
민기 형은 정말 꿈틀대며 기어갔다. 그렇게 유리 누나 앞까지 기어와서는 망설임도 없이 유리 누나의 발에 혀를 내밀었다. 유리 누나의 발에 민기 형의 혀가 닿자 유리 누나는 더럽다며 발을 빼고는 욕실로 가서 발을 씻고 나왔다.
“이제 그만 가자.”
유리 누나의 말에 혜림이 누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때까지 난 잠시 혜림이 누나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과연 혜림이 누나는 지금까지의 광경을 어떤 표정으로 봤을지 궁금했다. 확실한 건 지금 표정은 완전히 굳어있다는 것이다. 아니, 얼어있었다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너 허튼 짓하면 오늘 찍은 사진 뿌린다. 네 부모님께도 보낼 테니까 알아서 해.”
유리 누나의 말에 민기 형은 알아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혜림이 누나는 옷을 다 입었고 우리가 나가려 하자 민기 형이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풀어주고 가야지.”
“네가 알아서 풀고 가든가 내일 아줌마 들어오면 풀어달라고 해.”
“씨발년아, 발도 빨아줬잖아. 걸레 같은 네 보지보다 더러운 발도 빨아줬으면 풀어줘야 할 거 아냐!”
이번에는 유리 누나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문을 열고 나가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혜림이 누나와 나도 민기 형을 내버려두고 유리 누나를 뒤따라나갔다.
“누나, 나한테는 해코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누나한테는 할 수도 있을 텐데 안 무서워?”
“뭐가 무서워? 저런 새끼.”
유리 누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나 오늘 부산 가려고. 원래 다음 주에 유럽 가는데 부산 친척집에 있다가 바로 가려고.”
“돌아와서는?”
“쟤 다음 달에 군대가.”
“저 사이코 오늘 보니까 뭔가 찝찝하던데. 아무튼 항상 몸조심해.”
“그리고 우리한테는 사진이 있잖아. 뭐가 그리 걱정이야?”
유리 누나는 모텔 앞에 세워져 있던 민기 형의 오토바이를 발로 뻥 찼다. 오토바이는 흔들렸지만 다시 원래 있던 모습으로 우직하게 서있었다. 유리 누나는 있는 힘껏 다시 한 번 오토바이를 발로 밀었고 오토바이는 굉음을 내며 넘어졌다.
“이제 완전히 씻겨 내려간 거 같아.”
유리 누나는 우릴 보며 활짝 웃었다. 나도 미소를 지어 유리 누나의 기분에 맞춰주었다. 그렇게 유리 누나와 나는 웃으면서 헤어졌지만 혜림이 누나는 여전히 얼어있는 표정으로 집으로 갔다.
난 혜림이 누나를 섹스에 환장한 여자라고 몰아세웠다. 끝까지 거짓말이 아니라며 정말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말하는 혜림이 누나에게 속는 셈 치고 나간다고 대신 우리 동네까지 오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그게 거짓이었다면 다시는 안 볼 생각이었다.
누워서 쉬고 있다가 혜림이 누나가 우리 집 근처 커피전문점에 있다고 전화해서 그 쪽으로 나갔다.
혜림이 누나는 할 말이 없었던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재촉해도 뜸만 들이고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할 말이 뭐야?”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디서부터든 말 해.”
“나 진구랑 헤어졌어.”
“잘 됐네. 걔는 아니었어.”
혜림이 누나의 전화가 울렸지만 혜림이 누나는 바로 수신거부를 했다. 혜림이 누나가 다시 말을 이어가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다시 전화가 와서 나는 받으라고 했다. 혜림이 누나는 내 눈치를 보더니 전화를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혜림이 누나는 통화를 하면서도 계속 내 눈치를 봤다.
“나 지금 바빠.”
급한 일 있음 그 일 보러 가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난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서 집에 가서 쉬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눈짓으로 지금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혜림이 누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통화를 계속 했다.
“한 시간 쯤 뒤?”
날 한 시간이나 붙잡아놓겠다는 소리가 아니기를 바랐다.
“근데 왜 그런 데서 봐?”
피식 웃음이 났다. 혜림이 누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머릿속으로 대꾸하고 있는 내 모습이 웃겼다.
“알았어. 갈 때 전화할게.”
혜림이 누나는 전화를 끊고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얘기했다.
“할 얘기 남았어?”
“응. 너 혹시 내가 섹스에 미친 여자로 보여?”
“요즘에는 좀 그렇게 보여.”
“진구랑 헤어진 거 너 때문이야.”
나는 그저 혜림이 누나의 말이 나와 실컷 섹스하고 싶어서 진구 형이랑 헤어졌다는 소리로밖에는 들렸다. 그렇다면 진짜 섹스에 미쳤다는 말인가.
“너랑 섹스 하는 거 좋은 건 인정할게. 그렇다고 섹스에 환장해서 허구한 날 널 불러 섹스한 건 아냐. 내가 널 볼 수 있는 방법은 그거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그랬던 거야.”
또 한 번 일이 꼬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섹스 파트너는 서로의 몸을 사랑하면 되는 것으로 끝이어야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데 혜림이 누나는 그것을 넘어선 것 같았다.
“더 들어야 돼?”
“시작한 거 끝까지 얘기할게. 나 너 사랑해.”
예상했던 얘기였어도 직접 들으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좋은 말로 달래는 것은 혜림이 누나를 위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기대감 따위는 애초에 심어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차갑게 말했다.
“너 착각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속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런 식으로는 말하지 마.”
“지금 네 마음은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돼.”
“내가 바보야? 그런 것도 구분 못하게.”
바보가 아니라면 날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도 자신과 섹스를 즐기는 그런 남자를 보통의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상식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나 여자친구 있는 거 알잖아. 그것도 둘씩이나. 게다가 한 명은 네 친구야.”
“넌 여자친구의 친구를 건드렸잖아. 게다가 두 명이나.”
“두 명이라니?”
“내가 모를 줄 알았니? 네가 유리한테 했던 행동들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날 사랑한다는 건 더 말이 안 되잖아.”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게 사랑이야.”
“널 위해 충고하는데 앞으로는 그런 사랑하지 마.”
“내 사랑 갖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할 거면 날 사랑하지 않았어야 했다. 내가 관련되지 않은 문제였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남 얘기하듯 툭 던졌다.
“그럴 거면 나한테 얘기하지 말았어야지.”
혜림이 누나는 할 말을 잃었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알겠어? 이게 너를 대하는 진짜 나야. 내가 널 가질 때 했던 달콤한 말들은 너한테 한 게 아니라 네 몸에 한 거야. 더 정확히 말해줄까? 네 보지에 했던 말들이라고. 내 자지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바로 네 보지에게!”
혜림이 누나는 드라마를 많이 봤나보다. 내게 물을 끼얹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뿌릴 거면 제대로 얼굴에 뿌리든지, 물의 반은 내 티셔츠를 적셨다. 우리 동네였기에 망정이지 멀리서 이 꼴을 당했다면 젖은 채로 한참을 올 뻔 했다. 그래도 혜림이 누나가 확실히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생각에 기분은 홀가분했다.
* * *
왜 이렇게 날 찾는 선배들이 많은 건지 민기 형과 혜림이 누나에 이어 오늘은 유리 누나였다. 몸도 제법 가벼워진 거 같아 흔쾌히 수락했고 학교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멀리 유리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남자들은 꼭 한 번씩 유리 누나를 쳐다보았다.
엊그제, 그리고 어제 들은 예상치 못한 소식에 오늘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 얘기가 나올까 기대를 하며 유리 누나의 앞으로 갔다. 유리 누나의 표정을 보니 좋지 못한 소식이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기대감은 사라지고 살짝 긴장이 되었다.
“혹시 혜림이한테 얘기 들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들었던 걸 복습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네.”
“들었구나. 소연이는 아무 말도 안 해?”
“소연이요? 소연이한테는 말 안 했는데요.”
“혹시 민기가 소연이한테 연락했다거나 그러지 않았냐고.”
나는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어리둥절해 고개를 기우뚱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민기 형이 소연이한테 왜 연락해요?”
“너는 혜림이한테 뭘 들었다는 거야?”
“혜림이 누나가 절 좋아한다는 거랑 진구 형이랑 헤어졌다는 얘기요.”
“정말?”
놀란 얼굴로 오히려 나에게 되묻고 있는 유리 누나를 보니 기분 나쁜 기운이 내 몸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누나는 무슨 얘긴데요?”
“민기가 혜림이 강간했어.”
“네?”
내가 화들짝 놀라 목소리를 높이자 유리 누나는 내 팔을 잡고 말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 들어가서 얘기하자.”
“다시 한 번 말해보세요. 내가 잘못 들은 거죠?”
“딴 데 가서 얘기하자니까.”
나는 유리 누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시 얘기해보라고!”
“민기가 혜림이 강간했다고.”
“그 개새끼 지금 어디 있어?”
“몰라.”
나는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민기 형에게 전화를 거는 내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참만에야 전화를 받은 민기 형의 목소리는 여유로웠다.
[그래, 윤호냐?]
“너 이 개새끼 어디야?”
[너 형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어딘지만 말해, 개새끼야.”
[여기 모텔인데 올래?]
“어디, 무슨 모텔 몇 호야?”
[엊그제 네가 나한테 좆나 맞았던 모텔 402호다.]
나는 전화를 끊고 달렸다. 이 거지 같은 새끼는 왜 이렇게 모텔을 좋아하는지 또 모텔이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침대 위에서 혜림이 누나가 엎드린 자세로 민기 형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로 민기 형의 자지를 받아들이며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왔냐? 먼저 시작했…….”
내 발길질에 민기 형은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혜림이 누나는 침대 머리맡으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았다. 민기 형은 자지를 덜렁거리며 일어났다.
“이 새끼가 미쳤나? 이 좆밥 새끼가.”
민기 형은 내게 달려들었고, 나는 민기 형을 잡아 업어치기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민기 형은 꿈틀꿈틀 대며 일어나려고 했다. 겨우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려는 민기 형의 얼굴을 나는 발리슛을 하듯 걷어찼다. 민기 형은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엄살 피우지 마, 개새끼야. 아직 많이 남았어.”
언제 들어왔는지 유리 누나가 내 앞에 가로막으며 말했다.
“윤호야, 진정해. 일단 진정하자. 응?”
“꼴에 저 새끼 여자친구라고 감싸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네가 지금 너무 흥분한 거 같아서 그래. 일단 흥분부터 가라앉히고 얘기하자.”
난 혜림이 누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넌 뭐 좋다고 대주고 있냐?”
혜림이 누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혜림이한테 왜 그래? 혜림이는 하고 싶어서 했겠어?”
나는 악을 쓰고 마음대로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풀었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는 것 같았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던 화는 조금 풀어졌다.
“그럼 이제 얘기해봐. 어떻게 된 건지.”
유리 누나는 침대로 가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쟤가 나오래서 싫다고 했는데 안 나오면 내 사진이랑 동영상 인터넷에 뿌릴 거라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갔어. 그래서 어제도 이 모텔에 왔었어. 섹스 하려고 하기에 사진, 동영상 줄 때까지 안 할 거라고 했지. 그랬다가 몇 대 맞고 결국 강제로 섹스도 했어. 섹스를 하는 동안에도 수없이 맞았어. 신음소리 안 낸다는 둥 신음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둥 거기를 안 조인다는 둥 물이 적다는 둥 온갖 핑계로 때렸어. 처음에는 아프니까, 맞으면 너무 아프니까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어.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웠어. 점점 미친놈이 되어 가는 거 같았거든.”
유리 누나는 어제의 악몽 같던 시간이 떠올랐는지 울컥 했다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키려 했다. 나는 유리 누나를 보채지 않았다.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나도 자리에 앉아 일단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들으려 했다.
“저 미친놈이 혜림이를 부르라고 했어. 부르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저 미친놈의 매질 때문에…….”
유리 누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미안해, 혜림아 내가 미안해. 너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어.”
유리 누나도 울고, 혜림이 누나도 울었다. 혜림이 누나는 유리 누나에게 다가가서 안아주었고, 둘은 펑펑 울었다.
“괜찮아. 울지 마. 난 괜찮아.”
울지 말라는 혜림이 누나도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눈물을 보고 있자니 나도 눈시울이 붉어지려 했다. 난 그 모습을 감추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민기 형을 발로 두어 차례 걷어찼다.
“윤호야, 그만해. 나 계속 얘기할 거야.”
유리 누나는 애써 울음을 삼키며 얘기를 이어가려 했지만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안 들어도 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됐어. 이제 얘기 안 해도 돼.”
그 순간 옆구리에 통증에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옆으로 나뒹굴었다. 뒤이어 얼굴에 커다란 충격이 왔고 나는 또 바닥에 쓰러졌다.
“씨발새끼야. 좆같은 새끼가 어디서 까불어? 죽으려고.”
민기 형의 발길질이 이어졌고, 유리 누나가 소리를 지르며 민기 형에게 달려들었다. 덕분에 나는 민기 형의 발길질을 면할 수 있었지만 유리 누나는 민기 형에게 몇 차례 얻어맞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씨발년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나는 일어나서 민기 형에게 대항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머리가 띵한 게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혜림이 누나가 달려들어 민기 형의 뒤통수를 갈겼다. 민기 형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쌍욕을 퍼부으며 혜림이 누나를 가차 없이 두들겨 팼다.
“이것들이 단체로 죽고 싶어 환장했어?”
민기 형은 다시 내게 오더니 날 툭툭 차며 말했다.
“씹새끼야, 너는 내 보지 막 박아대면서 내가 하는 건 아니꼽냐? 내 보지 내가 박고, 나도 너처럼 네 보지 좀 먹겠다는데 왜 지랄이냐? 아, 씨발 네 보지도 아니지? 근데 왜 지랄이냐고!”
나는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섣불리 일어나지 않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내가 씨발 혼자 먹겠대? 같이 먹자고 불러줬으면 고맙습니다 하고 먹을 것이지 어디서 지랄발광이냐고.”
민기 형은 내 어깨를 밟았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민기 형의 발을 붙들고 벌떡 일어났다. 민기 형은 중심을 잡지 못해 기우뚱했고, 나는 바닥을 딛고 있는 다리를 걷어차 민기 형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바로 달려들어 조르기 기술을 걸었다. 민기 형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빠져나오려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나는 민기 형을 기절시킬 생각은 없었다. 단지 고통만 주고 싶었다. 그래서 기절할 때 쯤 살짝 풀어주고 다시 조이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죽겠다.”
유리 누나가 말리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했을 것이다. 나는 몸을 털고 있어났고, 민기 형은 목을 감싸 쥐고 콜록 거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저 새끼 어떻게 해줄까? 죽여줄까? 아님 강간범으로 넘길까?”
“씨발, 강간범은 내가 무슨 강간범이야?”
“아직 정신 못 차렸나보네.”
“저 년한테 물어봐. 좋다고 보짓물 흘리고 신음소리 질렀는지 안 질렀는지.”
“미친 새끼.”
“씨발년아, 넌 가만있어. 어차피 씨발 네 보지는 내 거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잖아.”
“미친 새끼야, 내 보지가 왜 네 거야?”
“주둥이 다물고 있어라. 나중에 진짜 주둥이 찢어버린다.”
유리 누나와 민기 형이 쌍욕을 섞어가며 싸우고 있는 동안 혜림이 누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앉아있었다. 나는 설마 하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혜림이 누나를 외면하고 머릿속에서 하고 있는 상상을 애써 지우려고 노력했다.
“유리 누나, 저 딴 놈이랑 그만 싸우고 어떡할까?”
“마음 같아서는 콩밥 먹이고 싶은데, 그래도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혜림이는 학교생활 힘들어하지 않을까?”
“그럼 그냥 여기서 죽일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죽어? 씨발새끼들아.”
나는 자꾸 우리 얘기에 끼어들어 조잘대는 민기 형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 입을 뻥 차버렸다.
“그만 나불대라.”
“엿 먹이고 싶은데 딱히 생각이 안 나.”
“이대로 묶어서 매달아놓을까?”
유리 누나는 농담으로 한 내 말이 맘에 들었는지 눈을 번쩍였다.
“좋은 생각이다. 묶어서 사람들 다 보게 하자.”
“진짜?”
“응. 괜찮은 생각 같아. 사진이랑 동영상도 찍어놓고.”
“야, 한유리. 너 나중에 나 어떻게 보려고 그렇게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우리는 민기 형의 말이 들리지 않는 마냥 쳐다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눈썹 한 올 꿈틀하지 않았다.
“맞다. 누나 사진이랑 동영상도 있다며?”
“어제 저 미친놈이 거짓말이었대.”
나는 민기 형을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사람을 보듯 쳐다보며 말했다.
“참 너도 가지가지 했다.”
“근데 묶을 게 있나?”
유리 누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묶을 만한 것들을 찾았다. 나도 주위를 둘러봤지만 방 안에는 끈으로 쓸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이건 어때?”
유리 누나가 집어든 건 민기 형의 옷이었다. 청바지는 별로였지만 셔츠는 나쁘지 않았다.
“근데 진짜 할 거야?”
“당연한 거 아냐? 묶어서 밖에 내던져 놓을 거야.”
유리 누나의 독기를 품은 눈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때 민기 형은 일어나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였고, 나는 바로 얼굴을 걷어 차버렸다. 민기 형은 다시 고꾸라져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근데 청바지로는 잘 안 묶일 거 같은데 손, 발 묶으려면 두 개는 있어야 하잖아.”
내 말에 유리 누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셔츠를 잡고 찢으려고 했다. 유리 누나의 완력으로는 셔츠를 찢기 힘들어보였다. 나는 손을 내밀어 유리 누나에게 셔츠를 달라고 했다. 나는 셔츠를 두 쪼가리로 나누었다.
내가 민기 형에게 다가가니 민기 형은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다.
“야이 미친 새끼들아, 너희 제 정신이야?”
유리 누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도 당해봐야 알겠지. 성적 수치심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유리야, 그만 하자. 내가 잘못했다.”
나는 민기 형의 팔을 잡고 묶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민기 형은 누운 상태에서 계속해서 반항했고, 급기야 주먹을 내 얼굴에 날렸다. 무게가 실리지 않아 별 타격을 없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조르기 기술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기절시킬 목적으로 말이다.
민기 형의 발버둥은 이내 잠잠해졌다. 나는 민기 형이 기절한 틈을 타 손을 묶고 민기 형을 깨웠다. 그리고는 완전히 정신이 들기 전에 발까지 묶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무릎 꿇고 빌 테니까 한 번만 봐줘.”
급기야 민기 형은 눈물까지 보였다. 나는 동정심이 들어 봐줄까 생각도 했지만 유리 누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지 민기 형의 뺨을 갈겼다.
“움직이지 마. 사진 예쁘게 찍어줄 테니까.”
유리 누나는 핸드폰을 꺼내 손발이 묶여 있는 나체사진을 여러 각도로 찍고 또 찍었다. 아마도 수십 장은 찍는 것 같았다.
“씨발, 그래. 다 찍어라. 그리고 나중에 보자, 한유리. 내가 네 보지 찢어서 찍어줄 테니까.”
민기 형은 최후의 발광을 했다. 유리 누나는 민기 형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미소 지었다.
“아직까지 반성하지 않고 있나 봐요. 제 전남친님. 반성하는 모습 보이면 봐줄까도 생각해보려 했는데.”
“아니야, 유리야. 나 반성하고 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내가 죽일 놈이야. 그러니까 한 번만 봐줘. 응?”
“봐줄까?”
“그래. 한 번만 봐주면 나 정말 항상 너한테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 테니까 제발 한 번만 봐줘.”
유리 누나는 민기 형 옆에서 일어나 침대로 가서 앉았다.
“봐줄게. 대신 여기까지 기어와서 내 발 핥아.”
독한 여자였다. 무서울 정도로 독했다. 그것도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섬뜩했다. 내가 저런 여자를 강간할 생각을 했었다니 안 하길, 아니 안 할 수 있게 된 게 천만다행이었다.
“미친년, 개지랄을 한다. 네 보지 쌈이나 싸먹어.”
“기어와서 내 발 핥는 게 그 꼴로 길거리 한복판에 있는 것 보다 치욕스러운가봐?”
“아니야, 아니야. 내가 잘못 생각했어. 할게. 해. 나 지금 기어가고 있어.”
민기 형은 정말 꿈틀대며 기어갔다. 그렇게 유리 누나 앞까지 기어와서는 망설임도 없이 유리 누나의 발에 혀를 내밀었다. 유리 누나의 발에 민기 형의 혀가 닿자 유리 누나는 더럽다며 발을 빼고는 욕실로 가서 발을 씻고 나왔다.
“이제 그만 가자.”
유리 누나의 말에 혜림이 누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때까지 난 잠시 혜림이 누나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과연 혜림이 누나는 지금까지의 광경을 어떤 표정으로 봤을지 궁금했다. 확실한 건 지금 표정은 완전히 굳어있다는 것이다. 아니, 얼어있었다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너 허튼 짓하면 오늘 찍은 사진 뿌린다. 네 부모님께도 보낼 테니까 알아서 해.”
유리 누나의 말에 민기 형은 알아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혜림이 누나는 옷을 다 입었고 우리가 나가려 하자 민기 형이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풀어주고 가야지.”
“네가 알아서 풀고 가든가 내일 아줌마 들어오면 풀어달라고 해.”
“씨발년아, 발도 빨아줬잖아. 걸레 같은 네 보지보다 더러운 발도 빨아줬으면 풀어줘야 할 거 아냐!”
이번에는 유리 누나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문을 열고 나가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혜림이 누나와 나도 민기 형을 내버려두고 유리 누나를 뒤따라나갔다.
“누나, 나한테는 해코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누나한테는 할 수도 있을 텐데 안 무서워?”
“뭐가 무서워? 저런 새끼.”
유리 누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나 오늘 부산 가려고. 원래 다음 주에 유럽 가는데 부산 친척집에 있다가 바로 가려고.”
“돌아와서는?”
“쟤 다음 달에 군대가.”
“저 사이코 오늘 보니까 뭔가 찝찝하던데. 아무튼 항상 몸조심해.”
“그리고 우리한테는 사진이 있잖아. 뭐가 그리 걱정이야?”
유리 누나는 모텔 앞에 세워져 있던 민기 형의 오토바이를 발로 뻥 찼다. 오토바이는 흔들렸지만 다시 원래 있던 모습으로 우직하게 서있었다. 유리 누나는 있는 힘껏 다시 한 번 오토바이를 발로 밀었고 오토바이는 굉음을 내며 넘어졌다.
“이제 완전히 씻겨 내려간 거 같아.”
유리 누나는 우릴 보며 활짝 웃었다. 나도 미소를 지어 유리 누나의 기분에 맞춰주었다. 그렇게 유리 누나와 나는 웃으면서 헤어졌지만 혜림이 누나는 여전히 얼어있는 표정으로 집으로 갔다.